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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먹는 씨 없는 과일은, 사실 '시한폭탄' 입니다.

지구・ 생명

by 신비과학 2025. 9. 2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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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은 과일의 존재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식물학적으로 과일의 유일한 목적인 '씨앗을 퍼뜨리는 것' 입니다.

 

달콤한 과육으로 동물을 유혹해 씨앗을 먹게하고, 멀리 다른 곳에 배설시켜 퍼뜨리는 거죠.

 

그런데 우리가 마트에서 흔히 사는 바나나, 포도, 수박을 한번 떠올려보세요.

 

씨앗이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과일들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완전히 잊어버린, 생물학적 역설 그 자체입니다.

 

이들은 인간의 도움 없이는 단 하루도 살아남아 번식할 수 없는 존재들이죠.

 

우리는 어떻게 자연을 해킹하여 이런 '불가능한 과일'을 만들어냈을까요?

 

그리고 그 편리함의 대가로, 우리는 지금 어떤 위험에 처해 있는 걸까요?

 

 

 

 

1. 모든 것은 한 수도원의 '돌연변이'에서 시작됐다.

 

 

 

씨 없는 과일의 역사는 약 100년 전, 브라질의 한 수도원에서 시작됩니다.

 

수도사들은 자신들의 오렌지 농장에서 아주 이상한 나뭇가지 하나를 발견합니다.

 

다른 가지와 달리, 유독 그 가지에서만 열리는 오렌지에는 씨가 전혀 없었죠.

 

이것은 '아조변이(Bud Mutation)'라고 불리는 자연적인 돌연변이었습니다.

 

나뭇가지의 눈(Bud) 하나에서 유전 정보가 우연히 뒤섞여, 수정 과정 없이도 스스로 열매를 맺는 '단위결과(Parthenocarpy)'능력을 갖게 된 겁니다.

 

말 그대로 '처녀생식'으로 열매를 맺게 된 셈이죠.

 

 

 

 

문제는 이 맛있는 오렌지를 어떻게 번식시키냐는 것이었습니다.

 

씨앗이 없었으니까요. 해답은 '접목(Grafting)' 이었습니다.

 

수도사들은 씨 없는 열매가 열리는 가지를 잘라, 씨가 있는 평범한 오렌지나무의 뿌리에 이어 붙였습니다.

 

그 결과, 나무 전체가 씨 없는 오렌지를 열리게 하는 복제 나무가 탄생했죠.

 

전 세계로 퍼져나간 이 복제 나무들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먹는 '네이블 오렌지(Navel Orange)' 입니다.

 

 

복제 오렌지

 

 

놀랍게도, 우리가 먹어본 모든 네이블 오렌지는 100년 전 브라질의 그 나뭇가지 하나에서 복제된 클론인 셈입니다.

 

 

2. 사라진 '진짜' 바나나를 아시나요?

 

 

 

이렇게 유전적으로 똑같은 복제 생물만 키우는 것은 편리하지만, 치명적인 약점을 가집니다.

 

바로 모든 개체가 똑같은 약점을 공유한다는 것이죠.

 

이 비극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것이 바로 바나나입니다.

 

지금 우리가 먹는 바나나는 '캐번디시(Cavendish)' 품종입니다.

 

 

캐번디시

 

 

하지만 1950년대까지만 해도, 전 세계 바나나 시장을 지배했던 것은 '그로 미셸(Gros Michel)' 이라는, 지금보다 훨씬 크고 달콤하며 풍미가 진한 바나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먹는 '바나나맛' 사탕이나 우유의 인공 향은, 사실 지금의 캐번디시가 아닌 바로 이 그로 미셸의 맛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이죠.

 

하지만 그로 미셸은 모두가 똑같은 유전자를 가진 복제 식물이었습니다.

 

 

 

 

1950년대, '파나마병'이라는 곰팡이병이 전 세계를 휩쓸자, 이 병에 대한 저항력이 전혀 없었던 그로 미셸 농장들은 속수무책으로 부너졌습니다.

 

결국 그로 미셸 바나나는 상업적으로 완전히 멸종하고 말았죠.

(생물학적 멸종이 아닙니다. 일주 지역에서는 여전히 판매되고 있습니다. 상업적 멸종, 즉 전 세계 바나나 시장을 지배했던 거대 농장들이 전멸하면서, 지금은 캐번디시로 바뀌었다는 얘기입니다.)

 

인류는 부랴부랴 파나마병에 저항력이 있는 새로운 품종을 찾아냈고, 그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먹는 '캐번디시' 입니다.

 

맛과 향은 덜하지만, 이거 말고는 대안이 없었죠.

 

 

3. 다가오는 두 번째 '바나나겟돈(Bnanapocalypse)'

 

 

 

여기서 진짜 문제가 시작됩니다.

 

우리가 먹는 캐번디시 바나나 역시 모두 똑같은 유전자를 가진 복제 식물입니다.

 

그런데 최근, 그 철옹성 같은 캐번디시마저 감염시키는 새로운 변종 파나마병이 나타나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는데요.

 

만약 이 병이 걷잡을 수 없이 퍼진다면, 우리는 그로 미셸이 사라졌던 것처럼 또 한번 바나나가 우리 식탁에서 사라지는 '바나나겟돈'을 맞이할지도 모릅니다.

 

이는 비단 바나나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씨 없는 오렌지 역시 '감귤 녹화병'이라는 질병에 매우 취약한 상태입니다.

 

 

4. 편리함이라는 '유지보수 함정'

 

 

 

우리는 수천 년간 유전적 다양성을 포기하는 대신, 더 크고 달콤하며 편리한 소수의 품종을 선택해왔습니다.

 

그 결과, 우리의 전 세계 식량 공급망은 유전적으로 똑같은 복제 식물들에 크게 의존하는, 매우 불안정한 시스템이 되었죠.

 

과학자들은 이를 '유지보수 함정(Maintenance Trap)' 이라고 부릅니다.

 

질병이나 기후 변화같은 작은 균열 하나가 전체 시스템을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는, 끊임없는 인간의 개입과 관리가 필요한 함정이라는 뜻이죠.

 

씨 없는 과일의 진짜 미스터리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유전적 다양성을 포기한 대가로 얻은 이 편리함을, 과연 우리가 미래에도 계속 지켜낼 수 있을까?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마주한 진짜 질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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