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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왜 '파란색'을 만들지 못하는 걸까?

지구・ 생명

by 신비과학 2025. 9. 2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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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파란색 호랑이나 파란색 다람쥐를 본 적 있나요?

 

아마 없으실 겁니다. 자연은 온갖 현란한 색으로 가득 차 있지만, 유독 '파란색' 동물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가 파란색 동물을 발견할 때면 그 색은 늘 상상 이상으로 강렬하고 아름답습니다.

 

자연은 마치 파란색에 있어서는 타협을 모르는 것처럼 보이죠.

 

도대체 왜 파란색은 이렇게 희귀하고 특별한 색이 된 걸까요?

 

그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화학과 물리학, 그리고 진화의 법칙을 넘나드는 놀라운 여정을 지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1. 색깔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feat. 플라밍고)

 

 

 

먼저 동물이 색을 갖는 기본적인 방법부터 알아야 합니다.

 

대부분의 동물들은 '색소(Pigment)'를 이용해 색을 냅니다.

 

색소란, 특정 색의 빛만 반사하고 나머지 색의 빛은 흡수해 버리는 화학 분자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플라밍고인데요.

 

 

 

 

 

플라밍고는 사실 잿빛으로 태어납니다.

 

하지만 이들이 먹는 갑각류에 포함된 '카로티노이드'라는 붉은 색소 덕분에 아름다운 분홍색 깃털을 갖게 되죠.

(만약 동물원에서 태어난 새끼 플라밍고에게 카로티노이드가 포함된 먹이를 주지 않으면, 그 플라밍고는 원래의 잿빛으로 자라게 됩니다. 그래서 동물원에서는 특별한 색소 보충제를 섞은 사료를 먹이곤 합니다.)

 

즉, 대부분의 동물에게 색깔이만 "당신이 먹는 것이 바로 당신의 색깔"인 셈입니다.

 

빨랑, 노랑, 주황, 갈색... 이 모든 색은 동물이 음식을 통해 얻은 재료로 만들어내는 색소 덕분입니다.

 

하지만 파란색은 아닙니다.

 

 

2. 파란색의 배신 : '진짜 파란색은 없다'

 

블루 모르포 나비

 

 

이제부터가 진짜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이 보는 대부분의 파란색 동물들은, 사실 파란색 색소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파란색처럼 '보일' 뿐, 실제로는 파란색이 아니라는 충격적인 사실이죠.

 

자연계 최고의 사기꾼(?)은 바로, '블루 모르포 나비' 입니다.

 

스마트폰의 나비 이모티콘의 주인공이기도 하죠.

 

 

 

 

이 나비의 날개는 눈부시게 파랗지만, 날개를 갈아서 가루로 만들면 그냥 칙칙한 갈색 가루만 남습니다.

 

파란색 색소는 어디에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 비밀은 바로 날개 표면의 '미세 구조'에 있습니다.

 

블루 모르포 나비의 날개 비늘을 현미경으로 수천 배 확대하면, 아주 작은 크리스마스 트리 모양의 나노 구조가 빽빽하게 배열되어 있는데요.

 

 

 

빛이 이 구조에 닿으면, 파란색을 제외한 모든 색의 빛 파장은 서로 간섭하며 상쇄되어 사라져 버립니다.

 

오직 파란색 빛의 파장만이 이 구조와 완벽하게 공명하여, 우리 눈으로 반사되는 것이죠.

 

즉, 이 나비는 화학적인 염료가 아닌, 나노미터 크기의 정교한 건축물을 이용해 물리적으로 파란색 빛만 '걸러내는' 겁니다.

 

 

3. 마술 같은 증거 : 알코올을 떨어뜨리면 파란색이 사라진다?

 

 

 

이것이 구조색이라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바로 '알코올 실험'입니다.

 

나비 날개의 미세한 나노 구조 틈은 공기로 채워져 있는데요.

 

만약 이 틈에 알코올을 한 방울 떨어뜨려 공기 대신 알코올로 채우면, 빛의 굴절률이 바뀌면서 마법처럼 파란색이 완전히 사라져 버립니다.

 

그리고 잠시 후, 알코올이 모두 증발해 다시 공기로 채워지면, 거짓말처럼 선명한 파란색이 되돌아오죠.

 

이 원리는 파란 깃털을 가진 어치(Blue Jay), 화려한 꼬리 깃털을 가진 공작에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심지어 우리 인간의 푸른 눈동자 역시 파란색 색소가 있어서가 아니라, 눈의 홍채 구도가 파란빛만 산란시키기 때문에 파랗게 보이는 겁니다.

 

 

4. 진화의 지름길 : 왜 화학이 아닌 물리학이었을까?

 

 

 

그렇다면 왜 자연은 다른 색들처럼 파란색 색소를 만들지 않고, 이렇게 복잡한 물리적인 방법을 선택했을까요?

 

과학자들의 가장 유력한 가설은 '진화의 효율성' 때문입니다.

 

아주 먼 옛날, 동물들은 파란색을 볼 수 있는 눈을 먼저 진화시켰습니다.

 

이때 파란색 몸을 가질 수 있다면 짝짓기나 위장 등에서 엄청난 이점을 가졌을 겁니다.

 

하지만 새로운 화학 물질, 즉 파란색 색소를 '발명'하고 그 제조법을 유전자에 추가하는 것은 생명체에게 너무나도 어렵고 복잡한 과제였습니다.

 

그 대신, 이미 가지고 있던 깃털이나 비늘의 표면 구조를 나노미터 단위로 살짝 바꾸는 것은 훨씬 더 쉬운 길이었습니다.

 

결국 진화는 어려운 화학 문제 대신, 더 쉬운 물리학과 엔지니어링의 길을 택한 겁니다.

 

 

5. 과학이 사랑한 색, 파랑

 

유일한 진짜 파란색 동물

 

 

물론 예외는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올리브윙 나비'만이 진정한 파란색 색소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이 나비는 진화의 어려운 길을 택한 아주 특별한 존재인 셈입니다.

 

1600년대에 로버트 훅이 현미경으로 공작 깃털을 보고 '이 색들은 환상적이다'라고 감탄한 이래로, 아이작 뉴턴을 미롯한 수많은 과학자들은 자연의 파란색이 무언가 특별하다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생명체가 생존을 위해 화학의 한계를 어떻게 물리학의 원리로 뛰어넘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경이로운 진화의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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