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

자칫하면 인류 멸망! 과거의 10가지 사건들!

신비과학 2017. 6. 4. 21:44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는 커다란 행운의 연속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 이외의 지적 생명체가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것이 다행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쨋든 우리 인류는 자칫하면 멸망했을 뻔한 위기를 여러번 무사히 넘겨왔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10. 보닐라 관측(1883년)



1883년 8월 12일, 멕시코의 천문학자 호세 보닐라는 태양을 가로지르고 있는 400여개의 물체를 발견했습니다.

10억 톤 이상의 혜성이 붕괴되어 형성된 잔해들이었습니다.

이는 공룡을 멸종시켰던 운석에 필적하는 크기로, 지구를 스쳐 지나가게되었습니다.


크기는 50m에서 4km에 이르렀으며, 파편 하나하나가 핵무기에 버금가는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만약 지구와 충돌하게 된다면 퉁구스카 폭발 사건과 같은 수준의 피해를 초래했었을 것입니다.

지구까지의 거리는 400 ~ 8,000km 정도로, 천문학적으로 아슬아슬한 거리를 스쳐갔다고 할 수 있습니다.



9. 퉁구스카 폭발 사건(1908년)



2,000km2의 숲을 날려버렸던 사건이며, 대기권에서 폭발한 소행성과 혜성이 원인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광대한 러시아의 대지에서 발생한 사건이며, 다행히 사망자는 보고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때의 폭발은 16만명의 목숨을 앗아갔었던 히로시마 원폭의 1,000배에 해당하는 위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65km 떨어진 곳에서의 목격담에 따르면, "하늘이 두동강 나고 숲의 상공에서는 불꽃이 보였다"라고 합니다.



8. 코로나 질량 방출(2012년)



마야 달력에 따르면 2012년에 세계가 멸망할 것이라 했었지만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7월에 이상하리만큼 커다란 코로나 질량 방출이 발생했었습니다.

지구가 9일 전에 지나갔었던 위치에서였습니다.


만약 지구에 직격했다면, 전기 설비는 완전히 파괴되었을 것입니다.

피해액도 엄청났었을 것이며, 복구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었을 것입니다.

혹은 현대 사회의 숨통을 끊어버렸을지모 모르겠습니다.



7. 아스클레피오스(1989년)



1989년 3월, 지구와 64만 5,000km 지점을 스쳐 지니갔었던 소행성입니다.

거리 상으로 보면 꽤 멀리 떨어져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6시간 전에 지구는 이 위치에 있었습니다.


충돌했었을 경우 핵무기 600메가 톤급의 위력과 비슷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참고로 세계 최대의 핵무기는 50메가 톤 급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로 인해 발생될 수 있는 버섯 구름의 크기는 에베레스트의 7배에 달했을 것이라고 합니다.



6. 오보(1983년)



1983년 9월 소련의 핵무기 조기 경보 시스템이 미국에서 발사된 대륙간 탄도 미사일을 감지했습니다.

총 5발의 미사일이 소련으로 향하고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사령관이었던 스타니슬라프 페트로프는 경보 시스템이 잘못되었다고 판단했습니다.

정말 공격이 이루어진 것이라면 5발이 아닌, 수백 발의 미사일이 발사된 되었을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다행이 그의 판단이 옳았습니다.

만약 경보 시스템을 믿고 소련이 보복 공격을 감행했다면 세계 전쟁이 발발했었을 지도 모릅니다.

오보의 원인은 높은 고도의 구름위의 보기 드믄 태양 광에 의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5. B-59 잠수함(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던 당시, 1척의 소련 잠수함이 조용히 잠입해 왔습니다.

이를 감지한 미 해군의 군함은 수류탄 정도의 소형 기뢰를 투하했으며, 사실 이는 수면위로 올라오길 기대했던 작전이지만 소련의 승무원은 이 사실을 몰랐습니다.


반대로 미군 측이 몰랐던 점은 B-59가 히로시마 원폭에 필적하는 핵 어뢰를 탑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기뢰에 폭발에 의해 잠수함이 심하게 흔들렸으며 함내의 온도는 38도를 넘어서고 있었습니다.

잠수함의 함장은 공격을 받고 있음이 분명하며 어뢰 발사의 여부를 고민했습니다.


어뢰 발사에는 간부 3명의 찬성이 필요했었으며, 바실리 아르키포프 부함장만 이를 반대했었습니다.

그는 공격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니며 이는 수면 부상의 사인이라고 함장을 설득했습니다.


맥나마라 전 미국 국방 장관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핵 전쟁 발발의 가능성이 높았다"라고 말했습니다.



4. 골즈보로 공군기 사고(1961년)



1961년 1월, 2발의 마크 39 핵폭탄을 탑재한 B-52 폭격기가 추락했습니다.

그 때, 노스캐롤라이나 골즈보로 상공에서 8메가톤 급의 핵폭탄이 이탈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당시 미국 정부는 폭탄이 기폭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 부인했었지만, 2013년 공개된 기밀 문서에서는 매우 위험한 상황이라 판단하고 있었음이 밝혀졌습니다.


보고서에는 "단순한 발전기 기술의 저 전압 스위치가 미국을 파멸로 부터 지켜냈다"라고 말했습니다.

핵폭탄은 히로시마 원폭의 250배나 더 큰 위력이 있었으며, 풍향에 따라서는 핵의 낙진이 뉴욕까지 도달했었을 가능성도 있었다고 합니다.



3. 달의 장난(1960년)



1960년 10월 그린란드의 조기 경보 레이더 기지에서 미국에 대한 핵 공격이 감지되었습니다.

군 관계자들은 동요하기 시작했습니다.


북미 항공 우주 방위 사령부에서는 문득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왜 소련은 정상 회담이 열리고 있는 이 타이밍에 공격을 한 것일까?'라고 말입니다.

이렇게 경보의 재확인이 이루어지게 되었으며, 하늘에 떠 있는 달이 원인이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2. 연습을 실전으로 착각(1979년)



북미 항공 우주 방위 사령부의 프로그래머에 의해 제 3차 대전의 방아쇠가 당겨질 뻔했었습니다.

그들은 컴퓨터 시스템을 통해 소련의 공격을 상정한 시뮬레이션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스템이 네트워크를 통해 국가 방어 시스템에 모의 공격 데이터를 전송해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조종사는 가족과 작별하고 전투기를 긴급 발진시켰으며, 군은 초 긴장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시뮬레이션 데이터라는 보고를 통해 안도의 한숨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1. 쿠바 미사일 위기(1962년)



1962년 10월 심야의 긴장 상태는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루스 공군 기지의 위병이 울타리를 오르려고 하는 수수께끼의 그림자를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몇 번의 발포를 진행하였으며, 침입자에 대한 경보가 울리게 되었습니다.

이 시스템은 부근 기지에게도 동일한 경보가 울리도록 설계되어 있었지만, 볼크 필드 공군 기지에서는 다른 경보가 울리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 3차 대전의 발발을 알리는 경보였습니다.


조종사들이 긴급 소집되어 전투기와 핵무기를 탑재한 폭격기들이 런웨이에 올랐습니다.

즉시 소련을 향해 핵 공격을 개시하려고 하는 그 때 1대의 트럭이 긴급하게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그 트럭은 오보임을 알리기 위해 열심히 라이트를 깜박거리고 있었습니다.


기지의 울타리를 칩입하려고 했던 그림자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소련의 파괴 공작원이었을까?

그 정체는 바로 곰이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