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주변에 숨어있는, 가장 이상하고 위험한 화학물질 9

우리가 사는 세상은 화학물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마시는 물도, 숨 쉬는 공기도, 심지어 우리 자신조차도 화학물질의 복잡한 결합체이죠.

하지만 오늘 우리가 만날 9가지 물질들은, 물이나 공기처럼 평범하지 않습니다.

지금부터, 당신이 화학 시간에 배웠던 모든 상식을 잊게 만들, 세상에서 가장 기묘하고 놀라운 화학물질 9가지를 소개합니다.
 

 

9. 소방관들이 사용하는 '젖은 물(Wet Water)'의 정체

 

불을 끌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물입니다.
 
하지만 소방관들은 때때로 평범한 물이 아닌, '젖은 물(Wet Water)'이라는 특별한 화학물질을 사용합니다.

이름만 들으면 이상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물은 원래 젖어있으니까요.
 
하지만 여기에는 과학적인 원리가 숨어있습니다.

물 분자들은 서로를 끌어당겨, 표면적을 최소화하려는 '표면장력'이라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힘 때문에 물은 나무나 섬유 깊숙이 빠르게 스며들지 못하고, 표면에서 겉돌거나 튕겨 나가기도 하죠.
 

표면장력

'젖은 물'은 바로 이 표면장력을 약화시키는 화학 약품(계면활성제)을 일반 물에 섞은 겁니다..
 
표면장력이 약해진 물은 더 이상 뭉치려 하지 않고, 훨씬 더 넓게 퍼지며, 타는 물체 깊숙이 빠르게 침투할 수 있게 됩니다.

즉, 말 그대로 '더 잘 젖는 물'이 되는 것이죠.
 
이 기술은 1960년대부터 사용되어 온 것으로, 적은 양의 물로도 더 효과적으로 불을 진압하기 위해 개발되었습니다.
 
 

8. 호두나무의 보이지 않는 암살자, '유글론(Juglone)'

 

호두나무 아래에서는 유독 다른 식물이 자라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이 나무가 뿌리와 잎, 열매껍질에서 '유글론(Juglone)'이라는 강력한 독성 화학물질을 뿜어내기 때문입니다.

이 물질은 주변 토양에 스며들어, 다른 식물이 산소와 이산화탄소를 교환하는 호흡 과정을 방해합니다.
 
말 그대로, 경쟁자를 '질식'시켜 죽이는 셈입니다.

이 '죽음의 영역'은 나무 중심부에서부터 반경 25미터까지 뻗어나갑니다.
 
이 범위 안에 토마토나 감자, 콩과 같은 식물이 심어지면, 얼마 지나지 않아 시들고 말라 죽게 되죠.
 

유글론은 인간에게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맨손으로 호두 껍질을 까거나 잎을 만지면, 일부 사람들에게는 붉은 반점 같은 피부 발진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또한, 호두나무를 자를 때 나오는 톱밥 가루를 흡입하면 폐에 손상을 줄 수도 있습니다.

호두나무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주변의 모든 경쟁자를 조용히 제거하는 냉혹한 '화학적 암살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7. 세상에서 가장 매운 고추보다 1만 배 더 매운 독, '레시니페라톡신'

 

세상에서 가장 매운 고추로 알려진 '페퍼 X'의 스코빌 지수는 약 270만입니다.
 
하지만 지금 소개할 이 물질의 스코빌 지수는 무려 160억(16 billion)입니다.

이 물질의 이름은 '레시니페라톡신(RTX)'으로, 고추가 아닌 선인장과 비슷한 다육식물의 수액에서 추출됩니다.
 
이것은 '매운맛'의 영역을 아득히 뛰어넘는, 사실상의 '신경독'에 가깝죠.

너무나 강력해서, 피부에 닿는 순간 통증을 느끼는 신경세포를 완전히 파괴해버립니다.
 

바로 이 '신경 파괴' 능력 때문에, 과학자들은 이 물질을 '궁극의 진통제'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암 환자나 만성 통증 환자의 고통스러운 부위에 직접 주사하여, 통증을 느끼는 신경세포 자체를 영구적으로 제거하는 것이죠.

만약 사람이 이것을 먹게 된다면, 심각한 내부 장기 손상으로 사망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절대로 음식이 아닙니다.

 

 

6. 시체 썩는 냄새의 정체, '카다베린(Cadaverine)'

 

혹시 '죽음의 냄새'를 맡아본 적이 있으신가요?
 
썩은 채소나 늪지대의 냄새도 불쾌하지만, 한때 살아있었던 생명체가 부패하는 냄새는 그것과 차원이 다른 불쾌감을 줍니다.

그 시체 썩는 냄새의 핵심 성분이자, 이름부터 노골적인 화학물질이 바로 '카다베린(Cadaverine)'입니다.

정확히는, 인체가 부패할 때 단백질이 분해되면서 나오는 '카다베린'과 '푸트레신(Putrescine)'이라는 두 물질이 이 끔찍한 냄새의 주범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돼지 사체에서는 이 물질들이 거의 생성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끔찍한 '죽음의 냄새'를 돈을 주고 사는 곳이 있는데요.
 
바로, 미국의 최상급 '유령의 집(Haunted House)'입니다.
 
이곳에서는 좀비 분장을 한 연기자가 관객을 쫓아올 때, 공기 중에 실제 시체 썩는 냄새와 유사한 화학물질을 분사하여 공포감을 극대화한다고 합니다.
 
 

5. 만지기만 해도 '맛'이 느껴지는 화학물질, DMSO

 

'디메틸술폭시드(DMSO)'는 제지 공정의 부산물로 만들어지는 강력한 용매(물질을 녹이는 액체)입니다.
 
의학계에서는 줄기세포를 냉동 보존하거나, 약물이 피부를 통해 더 잘 흡수되도록 돕는 용도로 사용되죠.

그런데 이 물질에는 아주 기묘하고 당황스러운 특성이 있습니다.
 
바로, 피부에 닿기만 해도 입안에서 '마늘' 맛이 느껴진다는 겁니다.

손가락 끝에 DMSO 한 방울을 묻히면, 얼마 지나지 않아 입안 전체에 쌉쌀한 마늘 향이 퍼져나갑니다.
 

이 기이한 현상은 DMSO가 피부를 통해 아주 빠르게 흡수되어 혈관으로 직접 침투하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혈액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나간 DMSO 분자는, 혀의 미뢰와 폐에 도달하여 '마늘 맛'과 '마늘 향 입 냄새'를 동시에 유발하는 거죠.

몸이 흡수하는 양에 따라, 이 기묘한 맛과 냄새는 하루 종일 지속될 수도 있습니다.
 
 

4. 우리 은하 중심부의 '라즈베리 럼주' 맛, 포름산에틸

 

새콤달콤한 라즈베리의 맛, 그리고 럼주의 향긋한 향기.
 
이 맛과 향을 내는 핵심 화학물질이 바로 '포름산에틸(Ethyl Formate)'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과학자들은 이 '라즈베리 맛' 분자를 지구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 바로 우리 은하의 중심부에서 발견했습니다.

궁수자리 방향에 위치한 거대한 가스 구름, '궁수자리 B2 성운(Sagittarius B2)'이 그 주인공입니다.
 

궁수자리 B2 성운(Sagittarius B2)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거대한 성운이 천문학적인 양의 '알코올'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 은하의 중심부는 말 그대로 거대한 '라즈베리 럼주 칵테일'이 떠다니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아쉽게도 우리가 이 우주 칵테일을 마실 수는 없습니다.
 
성운 속의 분자들은 마실 수 있는 액체가 아니라, 아주 희박하게 퍼져있는 가스 상태이기 때문이죠.
 
 

3. 벌의 '공격 신호'는 왜 '바나나' 냄새가 날까?

 

벌에 한 번 쏘이면, 주변의 다른 벌들까지 몰려와 같은 곳을 공격하는 무서운 경험을 하거나 들어본 적이 있을 겁니다.
 
어떻게 다른 벌들이 수많은 사람 중에서 정확히 그 목표물을 찾아내는 걸까요?

그 비밀은 벌이 침을 쏠 때 함께 방출하는 화학물질, '이소아밀 아세테이트(Isoamyl Acetate)'에 있습니다.
 
이 물질은 동료들에게 "적이 여기 있다!"고 알리는 강력한 '경보 페로몬'입니다.
 
최초의 벌이 쏜 침에서 나온 냄새를 맡고, 다른 벌들이 목표물을 정확히 찾아 집중 공격하는 거죠.

그런데 이 '공격 신호' 물질은 아주 놀랍고도 친숙한 냄새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달콤한 '바나나' 냄새입니다. 심지어 단순히 냄새만 비슷한 것이 아닌데요.
 
이소아밀 아세테이트는 실제 바나나에도 포함되어 있으며, 우리가 먹는 바나나맛 우유나 과자의 인공 향료로도 사용되는 바로 그 성분입니다.

그렇다면 바나나를 먹고 있으면 벌들이 공격할까요?
 
다행히도, 그렇다는 과학적 증거는 아직 없습니다.
 
실제 바나나에 포함된 양은, 벌침에서 방출되는 농축된 양에 비하면 아주 미미하기 때문입니다.
 
 

2. 수영장 5개를 '피망 맛'으로 만드는 화학물질, 피망 피라진

 

피망이나 파프리카를 썰 때 나는 특유의 풋풋한 냄새.
 
이 냄새의 정체가 바로 '피망 피라진(Bell Pepper Pyrazine)'이라는 화학물질입니다.

그런데 이 평범한 향기 분자는, 인간의 감각이 감지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물질 중 하나인데요.

과학자들에 따르면, 인간은 물속에 이 물질이 1조 분의 2(2 parts per trillion)의 농도만 있어도 그 '냄새'를 맡을 수 있으며, 10억 분의 0.2(0.2 parts per billion)의 농도만으로도 그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강력한 거냐면, 단 한 방울의 피망 피라진만으로 올림픽 규격 수영장 5개를 통째로 희미한 '피망 맛'으로 만들 수 있는 수준이죠.

흥미롭게도, 이 성분은 일부 포도 품종의 껍질에도 존재하는데, 와인을 만드는 과정에서 아주 극소량만 섞여 들어가도 와인 전체의 풍미를 망쳐버리는 '골칫거리'로 취급되기도 합니다.
 
 

1. '가짜 포도 맛'의 배신, 메틸 안트라닐레이트

 

포도맛 사탕, 포도맛 슬러시. 우리는 이 맛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왜 이 '인공 포도 맛'은, 우리가 마트에서 사 먹는 진짜 포도 맛과는 전혀 다를까요?

그 비밀의 중심에는 '메틸 안트라닐레이트(Methyl Anthranilate)'라는 화학물질이 있습니다.

1890년대, 과학자들은 오렌지 꽃에서 이 향기로운 물질을 처음 분리해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것이 '포도'와 아주 비슷한 향을 낸다는 것을 발견했죠.
 

 
이 발견은 곧 포도맛 사탕과 음료수를 만드는 데 이 물질을 사용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더 기묘한 사실은, 이 물질을 석탄의 부산물로도 대량 생산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시간이 흘러, 과학자들은 "진짜 포도 맛"을 찾기 위해 실제 포도를 분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포도에서 발견된 핵심 향기 성분은 다름 아닌 '메틸 안트라닐레이트', 바로 그 자신들이 오렌지 꽃과 석탄에서 뽑아냈던 바로 그 물질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진짜 포도에 들어있는 성분이, 진짜 포도 맛처럼 느껴지지 않는 걸까요?

여기에 마지막 반전이 숨어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포도 주스'나 '포도 잼', 그리고 포도맛 사탕에서 느끼는 바로 그 진한 향은, '콩코드 포도(Concord Grapes)'라는 품종에서 나옵니다.
 

콩코드 포도(Concord Grapes)

 
이 진한 보라색의 포도는 향이 매우 강하며, '메틸 안트라닐레이트'라는 향기 성분을 아주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죠.
 
100년 전, 과학자들이 처음 '인공 포도 향'을 만들 때 기준으로 삼았던 것이 바로 이 콩코드 포도의 맛과 향이었습니다.

반면, 우리가 오늘날 마트에서 주로 사 먹는 포도는 '생식용 포도'입니다.
 
씨 없는 청포도, 샤인머스캣, 거봉 등이 여기에 해당하죠.
 
이 포도들은 강한 향보다는 아삭한 식감과 높은 당도에 맞춰 개량된 품종입니다.
 
놀랍게도, 이 포도들에는 그 '인공 포도 향' 성분인 '메틸 안트라닐레이트'가 거의 들어있지 않습니다.
 

결론: 진짜와 가짜의 역설
 

결론적으로, 우리가 '가짜 포도 맛'이라고 생각했던 그 향은, 사실 '가짜'가 아니라 '콩코드 포도'라는 특정 품종의 '진짜 맛'이었던 셈입니다.

우리가 주로 먹는 포도의 종류가 향이 적은 '생식용 포도'로 바뀌면서, 오히려 원조 격이었던 '콩코드 포도'의 진한 향이 우리에게는 어색하고 '인공적인' 맛처럼 느껴지게 된 겁니다.
 
진짜와 가짜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시간이 흐르며 뒤바뀌어버린 재미있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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