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

열악한 환경의 미국 정신병원 11가지! 인체 실험까지 이루어지고 있었다?!

신비과학 2016. 11. 16. 07:30



옛부터 정신 병원이라는 곳은 뭔가 어두운 느낌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때 미국의 정신 병원에서 환자를 감금하고 악명 높았던 뇌엽 절제 수술이 이루어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안토니우 에가스 모니스가 포루투갈에서 처음 뇌엽 절제 수술을 했던 것이 1935년 입니다.

곧 미국인 의사인 월터 프리먼과 제임스 W 왓츠를 통해 전파되기 시작했으며, 1949년 부터 1951년 사이에 수술을 받았던 환자의 수는 5074명에서 1만 8608명으로 증가했다고 합니다.


존 F 케네디의 여동생 로즈마리도 이 문제가 많았던 수술을 받았었다고 합니다.

이 무렵 미국의 개혁가들이 정신 병원의 시스템을 조사했지만, 환자들이 치료라는 명목으로 비인간적 대우를 받고 있던 상황에 대해 그다지 문제를 삼지 않았었다고 합니다.


과거에는 이와 같은 정신 병원들이 많이 있었다고 하는데요.

이번에는 미국에서 가장 소름 돋는 정신 병원들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1. 토피카 주립 병원(켄자스 주 토피카), 1872년 ~ 1997년



거세가 의학적으로 옳은 것인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여 결론을 내리는 일은 상당히 어렵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켄자스 주에 있는 토피카 주립 병원의 의사들은, 이것이 합당한 방법이라고 판단했습니다.

1931년 켄자스 주의 법률에서는 상습적 범죄자, 정신 박약자, 간질 환자, 지능 지수가 낮은 자, 정신 지체자 등에게 거세를 실시하는 것이 합법적인 것이였으며, 이 병원은 54명에게 거세를 실시했습니다.


거세뿐만 아니라 환자의 피부가 부어 오를때 장기간 가죽 끈으로 묶거나 강간 및 기타 학대 등의 이야기도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병원의 사무 처리를 게을리하여 많은 환자들의 신원이나 병명을 알 수 었게 되어버린 점도 무서운 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이 병원은 1997년 까지 운영되고 있었다고 합니다.



10. 웨이버리 힐즈 요양원(켄터키 루이빌), 1910년 ~ 1961년



이 시설 또한 건강과 복지에 관심을 두지 않고, 인간을 실험 대상으로 취급했습니다.

이곳은 순수한 정신 병원은 아니었으며, 결액 환자들도 다수 수용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효과적인 치료 사례가 전혀 없었지만, 의사들은 환자의 갈비뼈와 근육을 절제하여 풍선을 삽입하고 폐를 부풀게 어 오르게 하는 야만적인 방법을 사용했다라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이 시설에서 환자의 사망률에 대한 외부 조사원과 요양원 측과의 조사 결과가 엇갈리고 있는 것도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부 의장인 J 프랭크 W 스튜어트 박사는, 1년에 최고 152명이라고 말했지만, 외부 조사에서는 162명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 시설이 운영되고 있던 50년 이상의 기간 동안 약 8,212명이 숨졌다고 합니다.



9. 오버브룩 정신 병원(뉴저지 시더 그로브), 1896년 ~ 1975년



개업은 1896년. 에식스 카운티에서 325 에이커 넓이의 땅에 정신 질환에 대한 새로운 병원을 건설했습니다.

경치가 좋은 한적한 언덕위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환자의 건강과 재활을 위해 좋은 입지라고 생각되었습니다.

하지만 병원이 오픈한지 얼마되지 않아 환자의 수가 병원 직원들의 수를 훨씬 웃돌게 되어 원할한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는 무섭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병원의 환경은 최악으로 흘러가고 있었으며, 20세기 초에는 24명의 환자가 침대에서 동사하게 되었으며, 150명 이상의 환자가 실종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병원은 100년 가까이 운영되었으며, 결국 1970년대에 폐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8. 윌로브룩 주립 학교(뉴욕 스테이튼 아일랜드), 1947년 ~ 1987년



국가가 운영하고 있는 지적 장애 환자들을 위한 시설이었지만, 나중에 정신 병원으로 재건되었습니다.

1960년대 이 곳의 시설 환경은 최악이었으며, 로버트 케네디는 이 시설을 동물원, 뱀의 굴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원래 4,000명의 어린이들을 수용할 수 있도록 건설되었지만, 1965년에 그 수는 6,000명에 육박하고 있었습니다.

목격담에 따르면, 방치된 환자들이 시설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으며, 자신들의 배설물을 퍼뜨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더 비참했던 것은 의사들이 치료라 칭하며 아이들에게 행했던 실험이었습니다.


간염의 발생에 대한 연구가 원할히 진행되지 않았던 의사 사울 크루그먼(Saul Krugman)은, 윌로브룩의 아이들을 이용해 다양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그는 살아있는 간염 바이러스를 60명의 아이들에게 접종시키고, 아이들의 피부나 눈이 노랗게 변해가고 간장이 비대해 지는 것을 관찰했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음식을 먹으면 바로 구토를 하기 시작했으며, 이로 인해 병이 더욱 악화되기도 했습니다.

크루그먼은 어차피 대부분의 아이들이 간염에 걸리니까 상관없다고 하며, 윌로브룩의 지적 장애 아이들에게 간염 바이러스를 접종하는 행위를 정당화 하기도 했습니다.

크루그먼은 의도적으로 아이들에게 간염 바이러스를 접종시키고 간염 환자를 관찰 할 수 있었습니다.


윌로브룩의 비극은 1980년에 제정된, 시설 수용자에 대한 인권의 공민권 법이 통과되면서 끝을 맺게 되었습니다.



7. 트랜스 엘러게니(Trans-Allegheny) 정신 병원(에스트 버지니아 주 웨스턴), 1864년 ~ 1994년



이 시설은 모든 면에서 열악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25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이었지만, 1949년에는 실제 2,400명 이상을 수용하고 있었습니다.

북미 의료 기관 조사위원회가 1938년에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이 시설에는 간질, 알코올 중독, 약물 중독, 문맹, 정신 지체자 등도 수용되고 있었다고 합니다.


제어할 수 없는 환자는 아이스 픽 등의 조잡한 도구로 뇌엽 절제 수술을 실시했으며, 그 밖에도 여러사람들과 함께 좁은 우리속에 갇혀야만 했습니다.

이상하리만큼 길었던 운영 기간 동안 환자에게 행해졌던 끔찍한 치료가 많은 사람들을 죽게 만들었던 것은 틀림 없습니다.




6. 바이베리 정신 병원(펜실베니아 바이베리), 1907년 ~ 1987년



시민의 저항은 현재의 정치 환경에서 안좋은 평가를 받을 수도 있지만, 확실한 효과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양심있던 저항자 찰리로드는 바이베리 정신 병원에서 그 임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그가 찍은 36장의 흑백 사진이 병원을 폐쇄로 몰아넣을 수 있는 충분한 증거로 활용되었던 것입니다.

이 사진은 많은 시민들을 격노하게 만들었으며, 영부인 엘리너 루스벨트 조차도 이 문제와의 싸움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었습니다.


나치 강제 수용소에 비유될 만큼의 많은 사람들 속에, 자신의 배설물 위에서 잠을 자야만 하는 환자들의 열악한 환경을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다수의 목격 증언에 따르면, 이 시설은 불결하기 짝이 없었으며, 환자들은 벌거벗은 채로 돌아다니고 있었다고 합니다.

로드가 찍은 가장 심한 환경 사진은 1946년에 <라이프>에 게재되었으며, 정신 병원에 대한 개혁으로 퍼지게 되었습니다.

여론의 압력이 더욱 강해지면서, 이 시설은 결국 폐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5. 블루밍 데일 정신 병원(뉴욕 모닝 사이드 하이츠), 1821년 ~ 1880년



1821년에 설립되었으며, 정신 질환 환자를 도덕적으로 올바르게 재활시키기 위한 시설이었지만, 병원이 했던 행위들은 그러한 도덕적 윤리에서 크게 벗어나 있었습니다.


1872년, 기자였던 율리우스 챔버스가 이례적인 방법을 사용해 이러한 사실을 폭로하게 되었습니다.

"뉴욕 트리뷴"의 편집장의 협력을 얻어 챔버스 자신이 10일 동안 병원에 들어가기로 했던 것입니다.


병원에서 나온 후 그 시설에서 실시되었던 비인간적인 대우에 대해서 자세하게 발표했습니다.

환자를 폭행하고 피를 토할 때까지 목을 조르는 등 병원측의 학대에 대한 사실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보도로 인해 병원 측은 정신 질환이 아니었던 12명의 환자들을 퇴원시키게 되었습니다.

또한, 챔버스의 저작 "미친 세상과 그 안에있는 사람들(A Mad World and Its People)"은 정신 질환을 가진 사람들의 권리 향상에도 기여하게 되었습니다.



4. 필그림 정신 의학 센터(뉴욕 주 브렌트 우드), 1941년 ~ 현재



이 시설의 경우 ,어느 한 환자에게 행했던 심한 학대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했던 학대보다 널리 이야기 되고 있습니다.


1940년대 베루라 존스는 당시 세계 최대의 정신 병원이었던 이 시설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아이를 임신한 후 정신병이 발병하게 되어 남편에 의해 입원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의사들은 뇌엽제 수술 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남편을 설득하여 승낙을 얻게 되었습니다.


베루라는 지속적인 망상에 시달리고 있었고, 10주 동안 15번에 걸친 전기 충격 요법을 받게 되었으며, 이후 의사가 그녀의 머리를 드릴로 뚫어 전두엽을 절제하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베루라의 손녀 크리스틴 존슨은 증거 관련 서류를 모아 이렇게 낡고 잔인한 수술이 행해지고 있는 이유와 뇌엽 절제술을 합법화 하고 이를 보편화 시킨 안토니우 에가스 모니스가 노벨상을 수상한 것에 대해 설명을 요구했습니다.


베루라는 수십 년동안 이 시설에서 보낸 뒤 1972년에 퇴원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든 이 시설은 지금도 운영되고 있다고 합니다.



3. 그레이 스톤 파크 정신 병원(뉴저지 모리스 플레인), 1876년 ~ 현재



이 시설도 다른 정신 병원들과 같이 과밀 상태였습니다.

1,6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이었지만 2,412명의 환자로 북적거리고 있었습니다.

또한, 이곳에는 PTSD에 시달리고 있는 참전 용사들에게 인슐린 요법이나 전기 충격 요법을 실시해오고 있었습니다.

포크 뮤직계의 전설, 우디 거스리가 입원해 있었던 것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거스리는 1956년 부터 61년까지 입원해 있었다고 합니다.

유전성의 퇴행성 신경 장애로, 난치병이었던 헌팅턴 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입원 중 거스리는 이곳을 "묘비"라고 부르고 있었으며, "Wardy Forty"라고 불리고 있던 병동에서 많은 편지를 썼다고 합니다.

비록 정신 질환이라고 진단되었더라도 정상인과 마찬가지로 환자들도 사람과의 접촉 및 상호 교환이 필요하다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했다고 합니다.



2. 펜 허스트 고아원(펜실베니아 주 스프링 시티), 1908년 ~ 1987년



환자에 대한 학대는 충분히 비난받을 만한 일이지만, 특히 이 정신 병원의 어린이들에게 행해졌던 치료의 방법은 극악 무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적 장애가 있는 아이들의 치료와 교육을 위해 지어진 이 병원은, 곧 반대의 노선을 걷게 되었습니다.


1968년, 기자였던 빌 발디니의 조사에 의해 이 병원의 무서운 실체가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고통 받는 어린 아이들" 이라는 제목의 보도에 의해 근처에서 울려퍼지는 방치된 아이들의 함성과 커다란 신체적, 성적 학대 등 전반적으로 환자에 대한 연민이 부족했던 것으로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또한, 반항적인 아이에게는 처음에 경고가 주어지지만, 두 번째 부터는 치아를 뽑아버렸다고 합니다.

과거 이곳에 있었던 테리 리 할다만의 추가 보고를 통해 법원은 3,000명 이상의 환자들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음을 인정하였으며, 병원은 곧 폐쇄 되었다고 합니다.



1. 아테네 정신 병원(오하이오 아테네), 1874년 ~ 1993년



19세기에는 성욕을 표출하거나 강한 감정을 나타내는 여성들은 히스테리 증상이 있는 것으로 진단되었습니다.

"생리에 의한 혼란"이라는 병 때문에 정신 장애를 일으켰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정신 병원에서 이러한 여성들의 치료 방법은, 몸을 얼게 만들거나 충격을 주거나 때리는 등의 방식이었으며, 질병을 없앤다라는 명목하에 뇌엽 절제술도 행해지고 있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