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내용은 유튜브 채널 '책밖과학'에서 제공하며, 타 블로그 및 유튜브 채널에서의 사용을 절대 금지합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되어버린 것일까....?
이번에는, 마지막에 비참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었던 실험들 7가지를 소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LSD에 절여진 코끼리
1962년 미국 중앙 정보국(CIA)는 환각제인 LSD의 효과를 철저하게 검증하려고 했습니다.
그 일환으로 오클라호마 대학의 협력을 얻어 한 마리의 코끼리를 대상으로 실험을 하게 되었는데요.
"스코"라고 이름 붙여진 그 코끼리에게 297mg의 LSD가 투여되었습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사람이 사용하는 양의 3,000배 이상에 해당하는 양이었습니다.
즉, 3,000명의 사람들이 환각 증상을 느낄 수 있는 양의 LSD가 한꺼번에 주입된 것입니다.
실험 시작 후 5분이 채 지나지 않아, 스코는 바닥에 쓰러졌으며 약 1시간 40분 후에 사망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은 곧 언론을 통해 알려지게 되었으며, 연구자들은 이 미친 실험의 "성과"를 발표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몇 달 후, 그들은 과학 저널에 "코끼리는 LSD에 극히 민감"이라는 논문을 게시했다고 합니다.
2. 남자에서 여자로, 그리고 다시 남자로
1985년 캐나다에서 태어난 데이비드 리머는 생후 6개월 때 "할례"수술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 수술이 기존과는 다른 방법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실패하고 말았는데요.
그 결과 이 아이는 성기를 잃게 되었습니다.
아들의 장래를 걱정하던 부모는 미국 메릴랜드 주 병원에 근무하던 심리학자인 존 매니를 찾았습니다.
그는 성 정체성 분야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었는데요.
존 매니는, 인간의 진정한 성별을 결정하는 것은 이린 시절의 경험이라고 부모를 설득했으며, 결국 데이비드는 성전환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후 데이비드는 "브렌다"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고 소녀로 자라게 되었습니다.
물론, 데이비드 본인도 자신이 원래 남자였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그(그녀?)가 14세 때 아버지가 진실을 털어놓게 되었는데요.
사실을 알게된 데이비드는 다시 성전환 수술을 결심하게 되었고, 수술이 성공하여 그는 남성의 몸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매우 비정상적인 과거를 안고 살았던 데이비드는 정신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상태가 계속되었습니다.
결국 그는 38세에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3. 죽음의 치료
1956년부터 1970년까지 미국에서는 간염의 치료법을 찾기 위한 연구가 정부 주도하에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이 연구의 실험 대상은 뉴욕 윌로우 브룩 주립 학교의 학생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지적 장애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들의 동의 없이 미완성 치료제가 투여되었습니다.
연구진은 약물의 효과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만, 실제로는 간염의 효과가 있기는 커녕 이 약 때문에 목숨을 잃는 학생들이 속출했었습니다.
책임을 추궁당한 정부는 학교 내에서 이미 간염이 만연하고 있었던 것이 원인이라는 변명을 반복했었다고 합니다.
4. 침팬치와 함께 성장한 아이
침팬치는 매우 지능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만약 침팬치를 인간의 환경에서 키우게되면 어떻게 될까?
인간에 육박하는 지성을 갖춘 "슈퍼 침팬치"로 성장하게 될까?
1930년대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윈스럽 켈로그 박사가 위험한 실험을 실시했었습니다.
그는 구아라는 이름의 침팬치 한마리를 자신의 아들인 도널드와 함께 키웠던 것입니다.
그들은 식사를 할 때도, 놀 때로 항상 함께였습니다.
이들의 사이는 무척 좋았으며, 도널드는 구아와 떨어질 수 없을 정도로 침팬치에게 친근감을 갖게되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구아도 조금씩 인간적인 특징을 보이게 되었습니다.
과연...이대로 실험을 계속하면 정말 인간과 같은 침팬치가 될 수 있을까...?
그러나 결과를 얻기 전에 켈로그 박사의 실험은 예상하지 못한 사태로 이어지게 됩니다.
구아가 점점 인간적인 특징을 갖춰가던 것과는 반대로, 도널드는 침팬치처럼 변해갔던 것입니다.
자신의 의지를 전하기 위해 신음소리를 내거나 짖는 행위를 했으며, 나중에는 인간의 기본적인 말조차 할 수 없게되어 버렸습니다.
결국, 박사는 급히 실험을 중단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5. 커피와 사형수
10세기 스웨덴에 처음 커피가 들어왔을 때, 그것은 매우 위험한 음료로 금지의 대상이되었습니다.
스웨덴의 왕 구스타프 3세도 커피는 사람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독극물이라 믿었으며,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한가지 실험을 실시했습니다.
그는 사형수 중에서 두 명을 골래네어 한 명에는 매일 커피를 3잔을 마시게 했으며, 다른 한명은 같은 양의 홍차를 마시게 했습니다.
그의 예상으로는, 커피를 마시는 쪽이 머지 않아 죽게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커피를 마시고 있던 사형수는 80세가 넘도록 오래 살게되었으며, 홍차를 마신 사형수와 구스타프 3세보다 더 오래살았다고 합니다.(아마 실험 참여의 대가로 사형을 면해준 듯)
6. 몸을 사리지 않은 실험 끝에 기다리고 있던 슬픈 현실
1793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황열이 대 유행했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스터빈스 퍼스라는 청년이 펜실베니아 대학의 레지던트 자격으로 황열병 연구를 시작합니다.
황열병은 여름에 발병율이 높고, 반대로 겨울에 낮다는 점에 주목한 그는 이 질병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은 일종이 더위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만약 그것이 맞다면, 황열병은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염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완전히 건강한 사람을 의도적으로 황열병에 감염시킬 수 있는가를 실험하기 위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위험한 실험에 참여하는 사람이 있을리가 없겠죠.
그래서 퍼스는 자신이 스스로 실험 대상이 되기로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황열병에 감염된 환자의 토사물을 먹었으며, 또한 그것을 몸 상처에도 발랐으며, 마지막으로 눈 속에까지 넣게 되었습니다.(미친ㄴ...)
하지만 이러한 실험을 통해서도 그는 황열병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이미 감염력을 잃은 환자의 토사물을 채취했었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황열은 모기를 매개로 전염되는 것인데요, 이것이 밝혀진 것은 이후 반세기 이상이 지난 후의 일입니다.
즉, 그에게 있어서 가장 슬픈 사실은..죽을 각오로 실험을 실시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아무 의미가 없는 실험이었다는 점입니다.
7. 가짜 기억을 이식한 여성
피험자에게 가짜 기억을 심어주는 실험은, 지금까지 미국의 정신과 의사에 의해 종종 발생했었습니다.
종종 그 실험은 트라우마가 될 것은 같은 끔찍한 기억이 사용됩니다.
가짜 기억을 이식해서 가장 비참한 결과를 초래했던 사례는, 미국 위스콘신 주에 사는 나디안이라는 여성입니다.
1986년 우울증 때문에 고민하던 그녀는 케네스 올슨이라는 의사를 찾게되었습니다.
그 뒤 약 6년 동안 치료가 이루어졌지만, 이는 검증된 치료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실험 단계를 벗어나지 못했던 치료였습니다.
올슨은 최면술 등을 이용해 그녀에게 허위 기억을 심어주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그녀가 믿게된 기억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나는 악마 교단의 신자이다."
"몇 번이나 성추행을 당한 적이 있다."
"어릴 적 친구가 눈앞에서 살해되었다."
"무덤에 억지로 묻힌적이 있다." 등등..
가짜 기억은 점점 추가되어 갔으며, 이러한 영향으로 그녀는 120개가 넘는 인격을 갖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이 비정상적인 상태는, 그녀의 정신에 큰 부담으로 작용했으며 점점 증상이 악화되어 갔습니다.
그 뒤 나디안은 올슨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으며, 합의에 의해 거액의 배상금을 받게 되었습니다.
실질적으로 재판에서는 이겻지만, 그녀는 이후에도 매일매일 악몽에 시달리는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https://youtu.be/pjF_dMQDe18?si=WFa0pug0oC9Bnehm
'인류・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밤에 에펠 탑을 촬영하면 불법? 그 이유는? (0) | 2017.10.27 |
---|---|
실제로 존재하는 초 능력을 가진 8명의 사람들 (1) | 2017.10.27 |
세계의 급식 10가지! 각 나라의 아이들은 어떠한 급식을 먹고 있을까? (1) | 2017.10.19 |
미술관에 장식된 그림과 지나치게 닮아있는 사람들! (0) | 2017.10.16 |
가장 비용이 많이 들어간 미국의 무기와 군사 작전들 8가지! (0) | 2017.10.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