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들은 시공간의 붕괴를 막는 '우주의 경계선'을 발견했습니다.
이 우주라는 무대에는 어째서인지 넘을 수 없는 경계선들이 그어져 있습니다.
빛보다 빠른 것은 존재할 수 없다는 속도의 한계처럼 말이죠.
그런데 만약, 속도의 한계가 전부가 아니라면 어떨까요?
우리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우주를 지배하는 또 다른 근본적인 경계선이 존재한다면 말입니다.
최근 물리학자들은 우주의 심연에서 또 다른 보이지 않는 규칙을 발견했습니다.
이 새로운 경계선은, '시공간의 붕괴'라는 파국으로 부터 이 세계를 지키는, 우주 스스로가 만들어낸 궁극적인 안전장치와도 같았죠.
가장 경이로운 사실은, 블랙홀의 충돌이나 빅뱅 마저도 이 법칙 앞에서는 예외가 아니었다는 겁니다.
우리는 과연 우연한 물리 법칙의 세계에 살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정교하게 조율된 경계 안에서 존재하고 있는 걸까요?
빛의 속도를 넘어, 이제 새로운 힘의 경계선이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이번 연구는 Classical and Quantum Gravity에 게재되었습니다.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1088/1361-6382/adb536
제 1장 : 보이지 않는 또 다른 벽
광활한 우주에는 보이지 않는 절대적인 벽이 하나 존재합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밝혀낸 이 벽은 바로 '빛의 속도'입니다.
"초당 약 30만 킬로미터"
이 경이로운 속도는 단순히 '빠름'을 넘어, 우리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과 정보가 결코 넘어설 수 없도록 정해진 궁극적인 한계선입니다.
당신이 던진 공이든, 가장 강력한 우주선이든, 심지어 눈에 보이지 않는 전파마저도, 이 법칙 앞에서는 예외가 될 수 없죠.
이처럼 그 무엇도 뚫을 수 없는 '광속의 벽'은, 현대 물리학의 체계를 떠받치는 가장 단단한 주춧돌이자, 우리가 우주를 이해하는 모든 방식의 근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주춧돌이 단 하나뿐이라고, 누가 확신할 수 있을까요?
하나의 주춧돌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야말로, 이 우주를 떠받치는 또 다른 주춧돌이 존재할 수 있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일지도 모릅니다.
바로 그 가능성 때문에, 물리학자들은 오랫동안 생각해 왔습니다.
빛의 속도뿐만 아니라, 초신성의 폭발이나 블랙홀의 충돌처럼 상상을 초월하는 에너지가 한순간에 터져나오는 '힘의 분출', 즉 출력(power)에도 우리가 모르는 절대적인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그 가능성을 말이죠.
그래서 과학자들은 실제로 우주를 관측하며, '힘의 한계선'이라고 부를 만한 증거가 있는지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우주에서 가장 밝은 폭발 현상으로 알려진 '감마선 폭발'이나 거대한 블랙홀 두 개가 충돌하며 시공간을 뒤흔드는 '중력파'같은 극단적인 현상들을 집중적으로 관찰했는데요.
그 결과, 이 현상들은 최대 7 x 10^49와트 이내의 상상조차 어려운 수준의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물론 이 수치들은 어마어마하게 거대하지만, '이것이 바로 우주의 절대적인 한계다!'라고 단정하기에는 아직 불확실했죠.
이에 과학자들은 시야를 넓혀 더 많은 종류의 우주 현상들을 비교하기 시작했고, 한 가지 흥미로운 패턴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주에서 발생되는 모든 현상들의 에너지가, 마치 보이지 않는 규칙이 있는 것처럼 일정 한계치를 넘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제 2장 : 이론 속의 한계, '플랑크 파워'
이제 과학자들은 아주 커다한 힌트를 얻었습니다.
이론상으로는 무한히 가능했던 힘의 분출이 실제로는 특정 범위 내에 머무른 다는 것.
이는 어쩌면 눈에 보이지 않는 '한계선'이 정말로 존재한다는 강력한 증거일지도 모릅니다.
이 힌트를 바탕으로, 과학자들은 방향을 바꿔 '힘의 한계치'를 이론적으로 직접 계산해 보기로 했는데요.
계산 방식은, 관측된 특정 현상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 어디서나 변하지 않는 빛의 속도나 중력같은 기본 상수들을 수학적으로 조합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계산 결과는, 단 하나의 명확한 '한계치'를 가리키고 있었죠.
'약 3.63 x 10^52와트'
바로 이 경이로운 값에, 과학자들은 '플랑크 파워(Planck Power)'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과학자들은 이 '플랑크 파워'가 바로 우리 우주에 적용되는 이론적인 출력의 한계라고 생각했습니다.
우주에 적용되는 출력의 한계라...그렇다면 이 플랑크 파워는 얼마나 거대한 에너지인 걸까요?
우리 태양계의 중심인 태양은, 홀로 엄청난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은하에는 이런 태양과 같은 별이 약 2천억 개가 모여있죠.
더 나아가, 우리가 현재 관측할 수 있는 우주에는 이런 은하가 약 2조 개가 있는 것으루 추정됩니다.
상상조차 어려운 이 모든 천체를 합친, 즉 관측 가능한 우주 전체의 모든 별들이 내뿜는 빛을 전부 합친 힘을 1이라고 한다면..
플랑크 파워는 이보다 약 100배 더 강력한 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플랑크 파워는 우리 우주 전체를 가득 메운 모든 별의 힘을 합친 것마저도 아득히 뛰어넘는, 그야말로 우주적인 '힘의 한계'라고 할 수 있는 겁니다.
물론 이러한 힘의 한계선은, 과학자들이 이론적으로 계산해낸 순수한 개념이기에, 아직 실제 우주에서 직접 관측되거나 검증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처럼 상상조차 어려운 '힘의 한계선'을 이론적으로 계산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과학자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기에 충분했는데요.
"그렇다면 혹시, 우리 우주에 정말로 넘어설 수 없는 출력의 상한선이 실제로 존재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본격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한 겁니다.
제 3장 : 두 개의 계산기, 그리고 하나의 벽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과학자들은, 아주 독특하고 복잡한 사고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블랙홀의 충돌 같은 우주적 사건이 만들어내는 '시공간의 잔물결'을 이론적으로 계산해 보기로 한건데요.
특히 과학자들은 이 중력파를, 두 가지의 서로 다른 '계산기'로 계산해 보기로 했습니다.
첫 번째는,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계산기였습니다.
이 계산기는 중력파를 이름 그대로, 시공간의 출렁이는 하나의 거대한 파동으로 취급했는데요.
그 결과, 이 방식으로는 에너지의 크기에 어떠한 이론적인 한계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충돌하는 블랙홀의 크기가 아무리 커져도, 계산기는 그에 맞는 훨씬 더 큰 에너지 값을 계속해서 계산해 냈죠.
반면에 두 번째는, 여기에 '양자 역학'을 적용한, 아주 특별한 계산기였습니다.
이 '양자 계산기'는 중력파를 거대한 파동이 아닌,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에너지의 알갱이(양자)'들의 흐름으로 다루었는데요.
이 새로운 규칙을 적용하여 계산하자, 첫 번째 계산기와는 전혀 다른, 아주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양자 계산기'는 에너지의 크기가 어떤 특정 지점에 다다르자, 더 이상 물리적으로 의미 있는 답을 내놓지 못하고 '오류'를 뱉어내기 시작했죠.
그리고 그 한계 지점이 가리키는 값은, 바로 약 3.6 x 10^52와트, 즉 플랑크 파워였습니다.
놀랍게도 이 값은, 앞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오직 우주의 기본 규칙들만을 조합하여 계산했던, 바로 그 이론적인 한계치와 소름 돋을 정도로 정확히 일치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양자 계산기는 이 플랑크 파워를 넘어서게 되도, 더 큰 '숫자'를 보여줄 수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숫자들은 마치 시스템의 한계를 초과했을 때 나타나는 '깨진 데이터'와 같았는데요.
숫자 자체는 보이지만, 그 안에는 아무런 물리적 의미도 담겨있지 않은, 그저 텅 빈 값에 불과했죠.
과학자들이 이 '깨진 데이터'를 우리 현실의 시공간에 억지로 적용하자, 더욱 충격적인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바로 우주의 시공간이 찢어지는 등, 우주를 지탱하는 가장 기본적인 규칙 자체가 붕괴해버리는 현상이 나타났던 겁니다.
이것이 바로, 시공간의 종말을 의미하는 '카스프(Cusp)' 현상이었습니다.
제 4장 : 4차원의 마법과 새로운 법칙
이번 실험에서 놀라운 사실이 하나 더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힘의 한계선'이 우리가 살고 있는 4차원의 세계에서만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이었죠.
이 내용을 이해하려면 먼저, '총 에너지'와 '순간적인 힘의 세기'를 구분해야 합니다.
거대한 블랙홀 두 개가 합쳐지면, 당연히 방출되는 '총 에너지'의 양은 훨씬 더 많아지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야기하는 '힘의 한계'는 이러한 총량이 아닌, 에너지가 방출되는 '순간적인 세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4차원의 우주에서는, 이 순간적인 세기의 최댓값은 블랙홀의 절대적인 '크기'보다는, 두 블랙홀의 질량 비율이나 회전 속도 같은 '충돌 방식의 효율'에 의해 결정되고 있죠.
이는 마치 자동차 두 대가 충돌할 때, 전체 파괴 규모는 차의 크기에 따라 달라지지만, '꽝!'하는 순간의 최대 소음은 '얼마나 효율적으로 부딪혔는가'에 더 크게 좌우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사건의 '크기'가 아닌 '효율'이 한계치를 결정하는, 바로 이 4차원의 특별한 방식 덕분에, 우주 전체에 단 하나의 '절대적인 한계선(플랑크 파워)'이 생길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즉, 아무리 거대한 블랙홀끼리 충돌하더라도 힘의 세기에 대한 한계선은 언제나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계에 차원 하나를 더 추가하여 5차원으로 만들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지게 되는데요.
연구팀이 수학적으로 '제5의 차원'이라는 조건을 추가하여 계산하자, 4차원의 단순했던 규칙이 복잡하게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5차원에서는, 사건의 '효율'이 아닌 '크기'가 순간 최대 출력의 한계값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죠.
이는 곧, 큰 블랙홀이 충돌할 때의 에너지 한계와 작은 블랙홀이 충돌할 때의 에너지 한계가 서로 다른 값을 갖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더 큰 블랙홀이 등장할수록, 힘의 세기에 대한 한계치 역시 계속해서 높아져, 더 이상 우주 전체를 아우르는 절대적인 상한선이 존재할 수 없게 되는 겁니다.
결국 우리 우주가 다른 변수 없이 정확히 4차원이라는 사실 그 자체가, '플랑크 파워'라는 절대적인 한계를 자연스럽게 만들어내는 가장 중요한 열쇠라는 것.
이것이 바로, 이번 이론 연구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경이로운 결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에필로그 : 우주의 새로운 안전장치
'플랑크 파워'라는 최대 한계의 존재는, 물리학에 대단히 흥미로운 의미를 던졌습니다.
만약 이 이론이 맞다면, 이제 우주의 모든 폭발 현상과 고에너지 현상에는 절대적인 '파워의 한계'가 존재하게 되는데요.
아무리 거대한 초신성이 폭발하고 블랙홀이 충돌해도, 약 3.6 x 10^52와트를 넘는 출력은 물리 법칙상 발생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는 '모든 물체는 빛의 속도를 넘을 수 없다'는 규칙과 정확히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관계라고 할 수 있죠.
'광속의 벽'이 원인과 결과의 순서를 지키기 위한 우주의 규칙이라면, 이 '출력의 벽'은 우주의 법칙이 극한 상황에서 스스로 무너지지 않도록 막는, '안전장치'라 해석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이번 연구는 중력 그 자체의 본질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남기기도 했는데요.
이 연구는 중력파를 부드러운 '파동'이 아닌, 쪼갤 수 없는 '에너지 알갱이'로 다루어 계산했습니다.
이는 중력 역시 빛을 이루는 입자인 '광자'처럼, 아직 발견되지 않은 가상의 입자, '중력자'의 흐름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강력하게 암시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물론, 플랑크 파워는 너무나도 거대한 값이기에 ,인류가 실험실에서 직접 이 한계를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한데요.
따라서 이 이론을 검증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더욱 발전된 중력파 관측 기술로 우주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정밀하게 분석하거나, 양자 중력 이론 자체의 발전을 기다려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마지막 질문과 마주하게 됩니다.
왜 이 '출력의 벽'은, 우리가 그 근처에 다가갈 수 있는 '광속의 벽'과는 달리, 관측된 그 어떤 현상보다도 아득히 높은 곳에 존재해야만 하는 걸까요?
어쩌면 그 엄청난 격차야말로, 이 우주가 가진 가장 자비로운 '배려'일지도 모릅니다.
우주가 자신의 가장 깊은 곳에 숨겨놓은 '붕괴'라는 최후의 종말로부터, 우리를 포함한 모든 존재를 최대한 멀리 떨어뜨려 놓으려는 것.
시공간의 종말이라는 비극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저 너머에 밀어둠으로써, 이 세계의 안녕과 질서를 지키려는 것은 아닐까요?
'빛의 속도'라는 익숙한 벽 너머, 우리가 결코 닿을 수 없기에 오히려 안전한, 저 아득히 높은 곳의 또 다른 벽 '출력의 한계'.
그 거대한 거리감 속에, 어쩌면 이 세계의 존재를 허락하는 가장 근본적인 비밀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릅니다.